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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용서하는 삶을 삽시다.

임동길 0
“서로 용서하는 삶을 삽시다”----- (2017년12월 16일(토요일) 제1575호,-----한국장로신문--12면-- Opinion Leader 란에 기고)

우리는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또한 불확실성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는 사람이 귀한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잘못했다고 말하고, 많은 대중앞에서 눈물을 흘리지만 실상은 체스처만 보이는 위선적인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제2대왕인 다윗(본명:엘하난-Elhanan)이 위대한 이유는 그가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자신의 죄를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보다 하나님의 긍휼과 인자하심이 더욱 크다는 것을 믿고 어떤 죄를 지었는지 다윗처럼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서 용서받는 자유함과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시51:1-19)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징계를 내리실지라도 그들을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한없는 사랑과 용서, 그리고 징계와 심판의 동전과 같은 양면이 있습니다.  양상은 다르지만 모두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죄악된 백성을 때로 징계하시고 심판하시지만 결국 마지막 순간에라도 극적으로 구원하시며 진노 중에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용서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 마:18:21절을 보면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라고 질문을 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찌니라고 말씀하시면서 형제의 죄문제와 결부된 죄용서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들의 의무는 죄인을 권면하는 일과 더불어 죄인을 용서하는 이 양자를 조화시켜야한다. 그런데 눅 17:3-4절에서는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너는 용서하라” 로 회개가 용서의 전제가 되고있는 최종숫자가 거론되어있는 반면 마태의 본문은 용서의 전제가 결코 회개는 아니며, 베드로가 언급한 일곱이라는 숫자도 예수님에 의해 단번에 부정된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용서하다” 뜻으로 사용된 헬라어동사 “아페소”는 “용서하는 사람과 관련된 죄악을 범죄한 형제로부터 먼 곳으로 보내다“는 의미로 악행자가 회개하여 죄 자백을 우리에게 하든 아니하든 즉시 모든 악을 용서해야 한다고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전통적 행습이나 랍비들의 가르침, 심지어 베드로의 제안까지도 거부하시고 예수님의 초월적인 권위로 용서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에 대한 새 지평을 여셨다.
“일흔번씩 일곱 번 즉 490번의 숫자는 강한 상징성을 내포한 말로서 숫자상의 어떤 기준이나 실제적인 용서의 범위를 초월한 끝없는 용서, 무제한적인 사랑을 가르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형제들간의 용서는 결코 횟수나 일정한 정도에 의해 재한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며, 형제들은 그들이 용서한 것보다 더 크고 많은 용서를 하나님께로부터 부여 받았기 때문이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에게 있어서 보복과 형벌이 그처럼 끝이 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주님의 끝없는 용서의 모범을 따르는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자비와 용서도 더 한층 끝이 없는 것이어야한다 (엡4:32, 골3:13). 진정 예수님의 이 새로운 용서의 법은 인간의 추악한 본성이 지닌 무제한적인 복수심을 무제한적인 사랑과 용서로 대치시켜 놓으셨다고 볼 수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사이에도 용서는 분명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용서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실 때에도 자신을 조롱하는 무리를 용서하셨습니다. 회개와 용서를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데 더욱 헌신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빌레몬서1:15-25)

오늘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한 사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세상에거룩한 영향을 끼치며 사는 백성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신 목적은 우리가 광야같은 이 세상에서 구별된 백성답게 살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하게 살 때, 세상 사람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을 통해 하나님을 볼 수 있었듯이 말입니다.(창39:23). 그는 형들이 자기를 노예로 팔았던 죄를 용서하고 형들을 사랑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늘 함께 하심을 보고,
느끼게 하였던 사람, 즉 그의 삶속에서 그리스도 향기가 나서, 그로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구원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도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통해서 이러한 역사가 일어나게끔 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쁘게 사용하시는 겸손한 일꾼, 겸손한 국가 지도자들이 되어야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와 교계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태에서도 우리는 명확이 깨닫고 알 수 있습니다. 한사람의 국가의 지도자가 교만할 때, 한사람의 교회지도자가 범법을 하여 세습을 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없는 그리스도인이 됨은 물론이고, 이에 대한 책임을 벗어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깊이 알면 더욱더 감사하게 되고, 겸손하게 되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의지하고, 용서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우리 모두가 살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

임 동길 장로
장석교회
전 기독전문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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